| ||||
“법대로 하라고 합디다.” 텐트 안에서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던 김점례(80) 할머니는 ‘철거’얘기가 나오자 눈물부터 글썽였다. “구청에서는 재판으로 하자고 하니, 우리는 변호사 댈 돈도 없는데….”
김 할머니는 얼른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불어터진 라면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랴도 살아야제.”
서울 강남구 포이동 남부혈액원 옆 공터에는 텐트 5개가 세워져 있다. 20명의 ‘넝마공동체’식구들이 혹독한 겨울을 나는 보금자리다. 넝마공동체는 지난 1986년 윤팔병(66)씨가 넝마주이들과 함께 영동5교 밑에 만든 자활공동체다. 이들은 컨테이너에 살면서 쓰레기를 주워 재활용품을 골라 팔며 살아왔다. 찾아오는 노숙인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만들어 주고 자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왔다. 양재천 영동5교 밑에서 집단생활을 시작했고, 98년 이곳 포이동 공터에 더 큰 보금자리를 만들어 공동체가 두 곳으로 늘었다. 그런데 이 포이동 공간에 주차장이 들어서기로 하면서 이들이 터전에서 밀려났다. 구청 쪽에서는 철거를 통보한 뒤 컨테이너 집들을 모두 강제 철거했다.
갈 곳이 없는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일단 공터 옆 도로에 텐트를 치고 버티고 있다. 건강이 안좋은 노인들은 영동5교에 남아있는 제1공동체로 보내고, 젊은 사람들은 다른 지역 노숙자 쉼터로 거처를 옮기는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강남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국가 소유의 땅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며 “이곳은 강남의 부족한 주차공간을 만들기 위한 땅이고 넝마공동체를 위한 대책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윤팔병 넝마공동체 대표 “노동의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노숙자로 취급하며 쉼터로 내모는 것은 거지근성만 키울 뿐”이라며 “국가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꾸려가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지 말라”고 호소했다.
지난 2년동안 근무했던 강남구 포이동의 빈민가 266번지의 삶을 담은 기사이다. (양재천 건너 보이는 타워팰리스가 인상적이다)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이쪽에 사시는 분들은 만나본 경험으로는 역시 세상일이 경험하지 않고는 객관적 시각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군사정권시절 강제 이주된 이들은 국가가 땅을 '임대'해준 사실을 분명히 알 것이다. 강제로 이주되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오래된 세월이 지났다 하더라도 분명히 정부는 이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이동 266번지를 그들의 소유로 넘겨줘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미 연세대의 신촌부지의 선례도 나와있지 않은가! 오래 사용했다고 소유권을 가진다는 주장은 분명히 어폐가 있는 것이다.
이들이 살고있는 환경을 본다면 슬레이브 지붕에 아무렇게나 나무로 덧댄 벽들... 그야말로 70년대 난민촌을 방불케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는것만이 사실은 아니다.
이미 고급승용차를 가진 사람들, 멀쩡히 소유하고 있는 집이 있지만 다른사람 명의로 보유하고 계속 살고있는 사람, 오래전에 거액의 돈을 받고 투자가에서 소유권을 넘긴 사람 등등 난민이라 부르기 낯뜨거운 인간들이 어림잡아 반이된다.
구룡마을과 마찬가지로 이들역시 순수한 생존권 보장이 아닌 추악한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한몫 잡겠다는 싸움이기도 하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가 그렇다는 얘기다)
잠시 샛길로 빠지자면 권력을 가진사람들은 쉽게 재산을 증식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엄격한 잣대들 들이대느냐! 라고 반문하고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요즘 주위에 많은 듯 한데, 부자가 보석을 훔치던 서민이 빵을 훔치던 간에 원칙은 둘 다 잘못한 것이다. 부자가 더 큰 물건을 훔쳤다고 서민의 죄가 가볍다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한때는 이들이 행정구역 사무소인 개포4동사무소에 몰려와 행패를 부린일이 있었다. 주위 주민들에게는 일말의 양해없이 무작정 농성을하며 폭력이 난무한 곳에서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동정심도 사라져버렸다.
그들만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노동자, 빈민만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이제는 바꿔야하지 않을까? 양극화가 심화 될 수록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냉정한 사고가 필요한 때이다.



